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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베토벤 소나타와 199명의 입학생'...KT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것들

박인복 전 청와대 춘추관장
기사입력 : 2025-12-12 17:44
[하이뉴스] *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인복 전 청와대 춘추관장
박인복 전 청와대 춘추관장

KT 차기 대표이사(CEO) 선임을 위한 시계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겉으로는 경영 공백을 메울 새로운 수장의 탄생이 임박한 것처럼 보이지만, 광화문 KT 사옥에 흐르는 공기는 여전히 차갑다. 잦은 CEO 교체와 외부의 수사 압박, 그리고 결정타가 된 최근의 대규모 해킹 사태까지. 지금 KT는 단순한 경영 위기가 아닌, 조직의 존립 근거가 흔들리는 복합 위기의 터널 한가운데 서 있다.

이 혼돈의 시기에, KT CEO 숏 리스트에 오른 홍원표 전 SK쉴더스 대표 부회장의 과거 행적이 IT 업계의 재조명을 받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그가 SK쉴더스 대표 시절 직원들에게 보냈던 CEO 레터은 위기의 KT가 지금 무엇을 가장 필요로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편지는 여느 대기업 CEO들의 엄숙한 훈시와 보여주기 식 치킨호프 데이식 보여주기 리더십과는 결이 달랐다. 그는 경영 현안을 설명하는 틈틈이 직원들에게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권하고, 멘델스존의 봄의 노래을 이야기했다. 놀라운 것은 디테일이다. 그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직원 자녀가 199명, 대학교 입학생이 172명”이라며 구체적인 숫자를 편지에 적어 내려갔다. “책상에 앉아 지난 1년을 명상했다”며 경영자로서의 고뇌를 숨김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나는 이 장면이 단순히 한 경영자의 감성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일화에 그치지 않는다고 본다. 그가 언급한 199명이라는 숫자는 보고용 데이터가 아니다. 그것은 직장 상사이고 동료인 내가 사내 구성원에게 늘 깊은 관심이 있다는 공감대를 나누고 직원과 그 삶의 공동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감성공감대는 강력한 신뢰의 시그널이다. 리더십의 가장 큰 결함은 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구성원에 대한 무관심에서 온다는 사실을 그는 정확히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KT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들여다보자. 해킹으로 뚫린 것은 보안 시스템이지만, 진짜 무너진 것은 조직 내부의 신뢰다. 반복되는 리더십의 표류는 구성원들에게 깊은 피로감을 안겼고, 부서 간의 결속력은 느슨해졌다. 위기가 닥쳐도 서로 책임을 미루는 조직적 무감각이 KT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리더십은 강력한 카리스마나 공격적인 구조조정이 아니다. 상처받은 조직을 하나로 묶어낼 심리적 통합이다. 전략보다 신뢰 회복이 먼저이고, 혁신보다 구성원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우선이다.

홍원표 후보가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KT 휴대인터넷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해 KT의 DNA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내부 출신이다. 동시에 삼성전자와 삼성SDS, SK쉴더스를 거치며 수평적이고 투명한 글로벌 소통 문화를 체득한 외부의 눈을 가졌다. 업계 관계자들이 그를 두고 “KT의 정서와 외부의 선진 문화를 화학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유일한 테크노크라트”라고 평가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위기 상황일수록 강한 리더을 원한다. 그러나 지금 KT에게 필요한 강함은 명령의 강도가 아니라 관계의 강도다. 무엇을 지시하느냐보다, 왜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구성원의 삶을 얼마나 세심하게 살피느냐가 더 중요한 시점이다.

해킹 사태는 기술적 리스크였지만, 이를 극복해야 할 조직의 분열은 심리적 리스크다. KT가 차기 CEO를 통해 되찾아야 할 것은 속도전이 아니다. 이 리더는 우리를 보고 있다은 심리적 안전감, 그리고 다시 한번 해보자는 조직적 연대감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토벤의 소나타를 권하고 직원 자녀의 입학을 챙기던 홍원표의 디테일 소통은, 잃어버린 KT의 신뢰 자산을 복원할 가장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경영 솔루션이 될 것이다. KT에는 지금 과학 이전에 사람을 챙기는 리더가 절실하다.

하이뉴스

박인복 전 청와대 춘추관장

press@h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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