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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프로HN '검토 중' 공시 뒤 내부자 주식 매수, 대법원 "미공개 정보 이용" 유죄 확정

오하은 기자
기사입력 : 2026-10-23 10:38
[Hinews 하이뉴스] 대법원이 상장사의 모호한 '검토 중' 공시를 근거로 한 내부자의 주식 매수를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으로 판단했다.

무상증자를 검토한다고만 알리고 배정 비율과 일정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내부자가 주식을 샀다면, 정보가 공개됐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이 같은 판단 아래 에코프로에이치엔 전 대표에게 내려진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 대법정 (사진=대법원 제공)
대법원 대법정 (사진=대법원 제공)

◇ 전 대표 징역 1년6개월 확정, 전 상무는 무죄

대법원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에코프로에이치엔 전 대표에게 징역 1년6개월과 벌금 15억원을 선고하고 6억1848만원을 추징하라고 명령한 원심을 확정했다.

함께 기소된 에코프로비엠 사업기획 담당 전 상무는 결론이 달랐다. 주식을 산 시점에 공급계약 관련 미공개 정보를 실제로 얻어 거래에 이용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확정했다.

사건은 2021년 7월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에코프로에이치엔은 코스닥 시장에서 관심이 높은 종목이었다. 전 대표는 회사의 대규모 무상증자 계획과 호실적이라는 호재를 공시 전에 알고 있었다. 무상증자는 회사가 쌓아둔 잉여금을 자본금으로 돌려 주주에게 대가 없이 새 주식을 나눠 주는 것이다.

시장에 관련 소문과 보도가 돌자 회사는 조회공시 답변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무상증자를 검토 중이나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조회공시는 주가나 거래량이 갑자기 움직일 때 한국거래소가 회사에 사실 여부를 묻고 답하게 하는 제도다.

전 대표 측은 재판에서 이 공시를 근거로 삼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무상증자 검토 사실이 이미 올라 있었으므로, 그 뒤의 주식 매수는 미공개 정보 이용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전 대표는 이 시기에 가족 명의 계좌로 주식을 대량 매수해 큰 차익을 얻었다.

◇ 대법원 "비율·기준일·상장일 빠지면 공개 아니다"

대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상증자를 추진하려 한다는 막연한 사실만 알린 것으로는 자본시장법이 요구하는 정보 공개가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일반 투자자가 투자 여부를 합리적으로 정하려면 1주당 신주 배정 비율, 기준일, 신주 상장 예정일 같은 구체적인 조건과 일정을 알아야 한다. 이런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해당 정보는 여전히 소수 경영진만 아는 미공개 중요정보라는 것이다. '검토 중'이라는 공시와 구체적인 실행 계획 사이에는 정보 격차가 크고, 내부자가 이 틈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면 시장의 공정성이 크게 훼손된다는 취지다.

무상증자는 한국 주식시장에서 주가를 움직이는 재료로 자주 거론돼 왔다. 이론적으로는 기업가치가 달라지지 않는다. 주식 수가 늘어난 만큼 주가를 조정하는 권리락을 거치면 기업의 순자산 가치와 미래 현금흐름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다르게 나타나곤 했다. 특히 시중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적은 이른바 '품절주'는 무상증자 결의만으로 주가가 급등하는 사례가 있었다. 그래서 배정 비율과 일정을 먼저 아는 내부자에게 이 정보는 큰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정보다.

◇ 에코프로에이치엔은 어떤 회사인가?

에코프로에이치엔은 2021년 5월 에코프로가 환경사업 부문을 인적분할해 만든 상장 계열사다. 에코프로비엠과 에코프로머티리얼즈가 배터리 소재로 그룹 외형을 키웠다면, 에코프로에이치엔은 1998년 창립 이래 쌓은 환경 정화·가스 제어 기술을 이어받은 회사다.

주력은 두 갈래다. 하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에 쓰는 클린룸 케미컬 필터다. 공기 중 미세 오염물질과 유해가스를 분자 단위로 걸러내는 제품으로,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 등이 고객이다. 다른 하나는 온실가스 감축 설비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과불화화합물(PFCs)과 화학 공정의 아산화질소(N2O)를 고온과 자체 개발한 촉매로 분해한다. 가스를 분해하는 촉매를 직접 개발·생산한다는 점이 진입장벽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소재 분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양극재를 굽는 내열 용기인 사거(도가니)의 국산화와 양산 체제를 갖췄고, 양극재의 구조 안정성을 높이는 첨가제(도펀트) 사업을 본격화했다. 반도체 후공정용 패키징 필름과 절연 소재 개발도 진행 중이다.

2021년 5월 재상장 직후 이 회사는 보통주 1주당 신주 3주를 주는 300% 무상증자를 결정해 공시했다. 시장 반응은 뜨거웠다. 거래량이 크게 늘면서 주가는 연일 상한가를 기록했고 시가총액은 수조원대로 커졌다.

에코프로그룹은 1998년 10월 환경소재 벤처로 출발했다. 충북 청주 오창과학산업단지에 터를 잡은 뒤 대기오염 방지와 온실가스 저감 기술로 쌓은 소재 역량을 2차전지 양극재와 전구체로 넓혔다. 경북 포항 영일만산업단지에 2차전지 밸류체인을 구축하며 국내 제조업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올라섰고 주가도 크게 뛰었다.

하지만 내부통제와 윤리경영은 몸집이 커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2020~2021년 대규모 양극재 장기공급계약과 기업 분할, 대규모 무상증자가 이어질 때마다 임원과 실무 직원의 미공개 정보 이용 사건이 불거졌다. 이동채 전 에코프로그룹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데 이어 이번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나왔다.

상장사들은 조회공시를 요구받으면 "중요 사안을 검토 중이나 구체적으로 확정된 바 없다"는 문구를 관행처럼 써 왔다. 이번 판결은 이런 공시가 내부자의 법적 책임을 피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기업의 공시 실무와 임직원 주식 거래 관리에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중요한 경영 사안이 '검토' 단계에 들어가면 관련 정보를 다루는 임직원의 주식 거래를 곧바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 공시도 형식적인 알림에 그치지 않고 투자자가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실질적 내용을 담았는지 따져봐야 한다.

하이뉴스

오하은 기자

haeun@h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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