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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매뉴얼은 있는데…산재는 왜 반복되나

지난해 산업재해 사고사망자 605명…추락 사망만 249명
위험성 평가 해도 개선 안 되면 무용지물…현장 노동자 참여도 부족
작업중지권 있어도 생산 압박·고용 불안에 행사 어려워

오하은 기자
기사입력 : 2026-10-21 21:18
[Hinews 하이뉴스] 안전교육을 받고, 작업 전 점검표를 작성하고, 위험성 평가까지 실시했는데도 노동자는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다. 사고가 발생하면 기업은 안전관리 규정과 교육 기록을 확인한다. 작업자에게 안전수칙을 안내했는지, 보호구를 지급했는지, 위험요인을 점검했는지가 조사 대상이 된다. 하지만 서류에 안전관리 절차가 기록돼 있다는 사실이 실제로 위험을 제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산업현장에서 반복되는 사고를 노동자의 부주의나 안전의식 부족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노동자가 위험을 알고 있어도 작업을 멈출 수 없고, 위험요인을 발견해 보고해도 개선되지 않는다면 안전수칙은 현장에서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사고를 줄이려면 교육과 점검을 강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위험을 발견한 뒤 실제 작업 방식과 설비를 바꾸는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살펴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5년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 사고사망자는 605명으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16명 늘어난 수치다. 2022년 623명에서 2023년 597명, 2024년 589명으로 감소했던 사망자가 다시 증가했다.

사고 유형별로는 추락이 249명으로 가장 많았다. 전체 사고사망자의 41.2%다. 부딪힘으로 62명, 무너짐으로 38명이 숨졌다. 안전난간과 작업발판을 설치하고, 위험구역을 통제하며, 작업 순서를 적절히 관리하는 등 기본적인 조치가 중요한 사고 유형들이다.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안전관리 제도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산업재해는 업종별 경기와 작업량, 사업장 규모, 작업환경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기본적인 안전조치와 관련된 사고가 반복되고 사망자가 다시 증가했다면, 기업이 마련한 안전관리 체계가 현장에서 어느 정도 효과를 내고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안전교육을 받고, 작업 전 점검표를 작성하고, 위험성 평가까지 실시했는데도 노동자는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다. 사고가 발생하면 기업은 안전관리 규정과 교육 기록을 확인한다. 작업자에게 안전수칙을 안내했는지, 보호구를 지급했는지, 위험요인을 점검했는지가 조사 대상이 된다. 하지만 서류에 안전관리 절차가 기록돼 있다는 사실이 실제로 위험을 제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진은 연합뉴스 제공
안전교육을 받고, 작업 전 점검표를 작성하고, 위험성 평가까지 실시했는데도 노동자는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다. 사고가 발생하면 기업은 안전관리 규정과 교육 기록을 확인한다. 작업자에게 안전수칙을 안내했는지, 보호구를 지급했는지, 위험요인을 점검했는지가 조사 대상이 된다. 하지만 서류에 안전관리 절차가 기록돼 있다는 사실이 실제로 위험을 제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진은 연합뉴스 제공

위험성 평가, 작성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위험성 평가는 작업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유해·위험 요인을 찾아내고, 위험의 크기를 판단해 이를 줄이기 위한 조치를 마련하는 절차다. 사고가 발생한 뒤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나기 전에 위험을 발견하고 제거하는 데 목적이 있다.

문제는 위험성 평가를 실시했다는 기록과 실제 위험이 줄어들었다는 결과 사이에 간극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평가표에 추락 위험이 적혀 있어도 안전난간이나 작업발판이 설치되지 않았다면 노동자가 처한 위험은 달라지지 않는다. 기계에 끼일 가능성을 확인했더라도 방호장치가 설치되지 않거나 정비 작업 중 기계 가동을 차단하는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사고 가능성은 남는다.

위험성 평가가 서류 작성에 치우치면 현장에서 반복되는 위험을 제대로 반영하기도 어렵다. 관리자가 정해진 양식에 맞춰 평가를 마무리하고, 실제 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는 평가 과정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작업자는 설비의 이상이나 작업 동선의 문제, 작업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을 직접 경험하지만 이런 정보가 평가에 반영되지 않으면 중요한 위험요인이 빠질 수 있다.

평가 결과를 현장에 전달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위험요인이 확인됐는데도 작업자에게 개선 내용이 공유되지 않거나, 개선 조치의 담당자와 완료 시점이 정해지지 않는다면 평가의 실효성은 떨어진다. 위험을 발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누가 언제까지 무엇을 개선할지 결정하고, 실제 조치가 이뤄졌는지 확인해야 한다.

특히 작업 방식이나 설비, 인력 배치가 바뀌면 기존 평가만으로는 새로운 위험을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 여러 업체가 동시에 작업하는 현장에서는 각 업체의 개별 점검만으로 전체 작업의 위험을 통제하기도 쉽지 않다. 작업 순서와 설비 가동 상태, 위험구역에 관한 정보가 공유되지 않으면 한 작업의 위험이 다른 노동자의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위험성 평가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노동자의 참여를 형식적인 절차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현장에서 어떤 위험이 반복되는지, 작업자가 어떤 상황에서 안전수칙을 지키기 어려운지 확인하고, 그 결과를 설비 개선과 작업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평가를 완료한 횟수보다 실제로 위험요인이 얼마나 개선됐는지가 중요하다.

위험해도 멈추지 못하는 노동자들
현장에서 위험을 발견했을 때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권리도 사고 예방의 중요한 장치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위험한 상황에서 작업을 계속하는 대신 일단 멈추고 안전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법에 권리가 명시돼 있다고 해서 현장에서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업을 중단하면 일정이 늦어지고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는 이유로 질책받을 수 있다는 우려, 계약 연장이나 고용에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는 걱정은 노동자가 위험을 감수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특히 하청업체 소속이나 단기 고용 노동자에게는 작업중지 결정이 자신의 일자리와 연결돼 있다고 느낄 가능성이 있다.

작업중지권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위험을 제기한 노동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조직문화부터 바뀌어야 한다. 위험 신고를 생산 차질이나 작업 지연의 원인으로 취급하면 노동자는 다음에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워진다. 반대로 위험을 보고하면 작업을 중단하고 개선 조치를 확인한 뒤 재개하는 절차가 정착되면 작업중지권은 사고를 막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작업 중단을 개인의 판단에만 맡기는 방식도 한계가 있다. 여러 업체가 함께 작업하거나 위험요인을 즉시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작업중지 기준과 보고 절차가 명확해야 한다. 노동자가 위험을 알렸을 때 누가 작업 중단을 결정하고, 누가 개선 조치를 확인하며, 어떤 조건에서 작업을 재개할지 정해져 있어야 한다.

작업중지권을 보장하는 것과 함께 위험을 발견하고 보고하는 노동자의 참여를 조직 차원에서 보장하는 일도 필요하다. 노동조합이나 노동자 대표가 위험성 평가와 개선 과정에 참여하고, 현장의 의견이 실제 조치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위험을 통제할 권한이 관리자에게 집중돼 있다면, 노동자의 문제 제기를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관리자가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책임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안전보다 공기가 먼저라면 사고는 반복된다안전관리 체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판단하려면 생산 일정과 비용이 안전조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살펴야 한다. 공사 기간이 촉박하거나 납품 기한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안전시설 설치와 작업 중단에 필요한 시간을 생산 차질로만 취급한다면, 현장에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작업을 이어갈 유인이 생긴다.

하청 구조에서는 이런 압박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원청이 작업 일정과 공정을 정하고 하청업체가 정해진 기간 안에 작업을 완료해야 하는 구조에서, 안전조치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으면 현장 노동자가 위험을 떠안을 수 있다. 하청업체에 안전수칙 준수를 요구하면서도 이를 이행할 인력과 자원을 확보할 여건을 주지 않는다면 안전관리는 형식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안전관리 전담인력을 확보하기 어렵고, 설비 개선 비용을 마련하는 데도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사업주나 현장 관리자가 생산과 안전 업무를 동시에 맡는 경우에는 위험요인을 확인하고 개선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쓰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안전관리 의무를 요구하는 것과 함께 전문인력·설비 지원을 확대하고, 위험도가 높은 작업부터 개선하도록 돕는 정책이 필요하다.

다만 인력과 비용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본적인 안전조치를 미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사업장은 위험이 큰 작업을 우선 파악하고, 사고를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를 작업 전에 완료해야 한다. 정부 역시 안전관리 서류를 갖췄는지만 확인할 것이 아니라 현장에 필요한 시설이 설치됐는지, 위험요인이 개선됐는지, 작업자가 위험을 보고했을 때 적절한 조치가 이뤄졌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기업들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마련하고 관련 절차를 정비해 왔다. 그러나 제도의 존재 자체가 사고 감소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실제로 작동하려면 경영진이 개선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고, 현장 관리자가 위험을 발견했을 때 생산 일정과 관계없이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 역시 위험을 보고하고 작업을 중단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아야 한다.

산업재해를 줄이는 데 필요한 것은 안전수칙을 더 많이 만드는 일만이 아니다. 이미 마련된 규정이 현장에서 지켜지는지, 위험성 평가 결과가 실제 개선으로 이어지는지, 작업자가 위험을 발견했을 때 작업을 멈출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안전을 강조하는 구호와 서류가 아무리 많아도 위험한 작업을 그대로 진행해야 하는 구조가 유지된다면 사고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은 사업주가 정해진 최소한의 규정만 이행하면 책임을 다한 것으로 여겨지는 구조의 한계를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해야 할 최소 기본선만 다 나열해 놓고 난 다음에 그거를 이수하게 되면 사업주의 안전보건 관리에 책임이 소각되는, 이런 구조에서는 포괄적으로 자신의 사업장의 위험을 스스로 드러내라고 하는 구조는 맞지 않다.”

하이뉴스

오하은 기자

haeun@h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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