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질병의 경계를 묻다...『생명윤리의 생물학적 토대』 생물철학과 임상의학이 만나는 지점
오하은 기자
기사입력 : 2026-09-16 17:34
[Hinews 하이뉴스] 임상과 의학 연구 현장에서는 생물학적 사실만으로 답하기 어려운 규범적 질문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질병에 대한 치료와 인간 역량의 향상을 가르는 경계는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국가의 공적 보건의료 서비스가 책임져야 할 질병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와 같은 문제다.
케임브리지대학교 과학사·과학철학과 교수이자 생물철학과 생명윤리학자인 팀 르윈스(Tim Lewens)는 『생명윤리의 생물학적 토대』에서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규범적 판단과 생물학적 개념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본다. 『생명윤리의 생물학적 토대』는 건강과 질병을 나누는 기준에서 치료와 향상의 경계, 유전자와 환경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현대 생명윤리가 마주한 여러 질문을 생물철학의 관점에서 검토하는 책으로 지난 8월 31일 출간됐다.
책이 먼저 파고드는 것은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건강'과 '질병',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구분이다. 르윈스는 이들 개념이 순수하게 가치중립적인 생물학적 데이터만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어떤 상태를 질병으로 규정하고 치료가 필요한 대상으로 판단하는 과정에는 생물학적 사실뿐 아니라 개인의 삶과 사회적 환경, 가치 판단이 함께 개입하기 때문이다.
『생명윤리의 생물학적 토대』는 케임브리지대학교 과학사·과학철학과 교수이자 생물철학과 생명윤리학자인 팀 르윈스가 쓰고 서울대학교병원 수련의로 근무하고 있는 윤정환이 번역했다. <사진=서연비람 제공>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크리스토퍼 부어스의 생물통계학적 질병관과 필리파 풋의 네오아리스토텔레스주의 기능 이론을 검토한다. 생물학적 기능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이 곧바로 도덕적인 악이나 의학적 치료의 당위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통계적으로 비전형적인 신체 상태라고 해서 반드시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데 장애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에게 적절한 환경적 지원과 기술적 보조가 제공된다면 일반적인 생물학적 기준에서 벗어난 특성을 지닌 경우에도 충분한 유기체적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논의로 이어진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변형과 배아 선택, 선천성과 운하화, 진화심리학의 정책 적용 등 현대 의과학이 마주한 구체적인 쟁점으로 확장된다. 르윈스는 특정 유전적 특성이 언제나 동일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적 조건에 따라 서로 다른 표현형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반응규범' 개념을 통해 단순한 유전자 결정론을 경계한다.
결국 책의 논의는 무엇을 '정상'으로 규정하고 의료와 사회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향한다. 개인의 유전자나 신체를 하나의 정상적인 기준에 맞추는 것만이 보건의료의 목표가 될 수 있는지, 또는 서로 다른 기능과 신체적 조건을 지닌 개인들이 자율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환경적 조건을 조성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로 봐야 하는지를 묻는다.
국내 번역은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수련의로 근무하고 있는 윤정환이 맡았다. 윤정환은 대학 재학 시절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연출한 최상재 PD와 교양 논리서 『논리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를 공동 집필한 바 있다. 이번 번역에서는 의학적 배경과 논리학을 다뤄온 경험을 바탕으로 원저의 주석과 생물학·철학적 개념, 논증 구조를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