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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 경영책임자 집행유예 90%…“사고 후 합의보다 사전 안전투자에 무게 둬야”

박미소 기자
기사입력 : 2026-10-07 11:34
[Hinews 하이뉴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중대산업재해 사건에 대한 판결이 누적되면서 경영책임자에 대한 양형이 기존 산업안전보건범죄의 관대한 처벌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유족과의 합의나 처벌불원이 대부분의 사건에서 감경요소로 작용하면서 사고 발생 이후의 대응보다 사고 이전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이행 여부를 중심으로 양형기준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대재해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는 7일 중대재해처벌법 양형기준 수정안에 대한 의견을 내고, 현재까지 축적된 판결을 고려할 때 새로운 양형기준이 기존의 관대한 양형관행을 그대로 답습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네트워크에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노동건강정책포럼, 노동권연구소,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민주노동연구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등 노동·법률·보건 분야 단체와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중대산업재해 사건에 대한 판결이 누적되면서 경영책임자에 대한 양형이 기존 산업안전보건범죄의 관대한 처벌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유족과의 합의나 처벌불원이 대부분의 사건에서 감경요소로 작용하면서 사고 발생 이후의 대응보다 사고 이전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이행 여부를 중심으로 양형기준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진은 연합뉴스 제공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중대산업재해 사건에 대한 판결이 누적되면서 경영책임자에 대한 양형이 기존 산업안전보건범죄의 관대한 처벌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유족과의 합의나 처벌불원이 대부분의 사건에서 감경요소로 작용하면서 사고 발생 이후의 대응보다 사고 이전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이행 여부를 중심으로 양형기준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진은 연합뉴스 제공

네트워크에 따르면 2026년 10월 3일 현재 확인되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1심 선고는 167건이다. 이 가운데 확정된 사건만 보면 경영책임자 101명 중 91명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집행유예 비율이 90%에 달했다. 실형을 선고받은 경영책임자는 3명에 그쳤다.

1심만 놓고 보면 경영책임자에 대한 실형은 13건인 반면 집행유예는 122건으로 나타났다. 상급심 결과까지 반영한 최종 형을 기준으로도 집행유예가 124명, 실형이 11명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이 같은 판결 경향이 이번 양형기준 수정안에 상당 부분 반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존 산업안전보건범죄의 형사책임 구조와 양형관행만으로는 기업의 안전관리시스템 실패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제정됐다. 하지만 새로운 양형기준이 기존 판결의 평균적인 형량을 출발점으로 삼을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이 요구하는 규범적 변화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실제 1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된 131건 가운데 130건이 징역 2년 이하였으며, 109건은 수정안의 기본영역 하한인 징역 1년 6월에도 미치지 못했다. 가장 빈번하게 선고된 형은 징역 1년이었으며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67명에게 선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양형위원회의 수정안은 중대산업재해치사의 감경영역을 징역 10월 이상 2년 이하, 기본영역을 징역 1년 6월 이상 4년 이하로 설정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감경영역의 하한을 법정형 하한인 징역 1년보다 낮은 10월로 정한 부분을 문제로 지적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6조 제1항은 중대산업재해치사죄의 법정형을 ‘1년 이상의 징역’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형기준상 감경영역에 징역 10월이 포함될 경우 실제 선고 과정에서는 작량감경 등을 통해 법정형 하한보다 낮은 형량이 적용되는 상황이 사실상 예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양형기준이 과거 판결의 평균값을 단순히 정리하는 통계표가 아니라 특정 범죄에 대한 법질서의 규범적 평가를 제시하는 기준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중대산업재해치사의 기본영역 하한을 산업안전보건법상 치사죄의 기본영역 상한인 징역 2년 6월 수준 이상으로 설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족과의 합의가 사실상 일반적인 감경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도 핵심 쟁점으로 꼽혔다.

양형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1심 유죄판결 145건 가운데 135건에서 유족과의 합의 또는 처벌불원이 양형사유로 고려됐다. 합의가 이뤄진 129건 가운데 최종 실형에 이른 사건은 4건에 불과했던 반면, 합의가 없거나 불완전한 14건에서는 7건이 실형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결과를 두고 유족과의 합의가 더 이상 중대재해 사건에서 예외적인 사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거의 모든 사건에서 존재하는 합의를 특별감경인자로 규정하면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사건에서 형량의 출발점을 낮추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합의가 특별감경인자에 그치지 않고 집행유예의 주요 긍정사유로도 작용할 경우 영역 결정과 특별조정, 집행유예 판단 등 여러 단계에서 반복적으로 형량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사고 이후 유족과 합의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는 것보다 사고 발생 이전에 안전설비와 인력 등에 충분히 투자하는 것이 형사책임을 줄이는 데 더 중요하게 작용하도록 양형기준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에 보내야 할 메시지도 ‘사고 후에 잘 합의하면 형을 줄일 수 있다’가 아니라 ‘사고 전에 안전에 투자하지 않으면 무거운 책임을 부담한다’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중인자의 실질적인 효과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특별가중인자가 2개 이상 인정될 수 있는 사건 16건 가운데 가중영역 하한인 징역 3년 이상의 형에 이른 사건은 아리셀 사건 1건뿐이었다. 가중·감경 인자가 함께 존재한 41건 가운데 31건은 최종 형량이 기본영역 하한인 징역 1년 6월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을 하나의 특별가중인자로만 평가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사망자 2명이 발생한 사건과 20여 명이 사망한 사건이 동일하게 하나의 가중인자로 평가될 수 있는 구조는 실제 피해 규모의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사망자 또는 중상자 수에 따라 가중 정도를 단계화하거나 다수 사망사건을 별도 유형으로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의 본질을 개별 근로자의 실수나 사고를 일으킨 특정 기계의 결함이 아닌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 실패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공소장 235건을 분석한 결과 시행령 제4조 제3호의 위험요인 확인·개선 의무가 적시된 사건은 218건으로 93%에 달했고, 제5호의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에 대한 권한·평가 관련 의무 위반은 168건으로 71%를 차지했다. 공소장 한 건당 평균 3.1개의 시행령상 의무 위반이 적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의 핵심이 현장에서 발생한 단일한 실수나 기계적 결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험성평가와 보고체계, 권한배분, 예산, 감독 등 기업 차원의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를 따지는 데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근로자가 안전장치를 해제하는 등 사고에 직접적인 행동을 한 경우에도 단순히 근로자의 부주의 여부만을 볼 것이 아니라 왜 그런 행동이 발생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다. 생산량 압박이나 인력 부족, 작업관행, 안전교육 부실, 위험정보 접근 제한 등 구조적인 원인을 함께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반복사고에 대한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사고 이전 동일 회사 또는 사업장에서 재해가 발생했거나 행정기관·점검기관의 지적이 확인되는 사건은 36건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위험이 이미 현실화된 상황에서 경영책임자가 이를 인식할 수 있었음에도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개선하지 않았다면 의무위반에 대한 비난 가능성이 더욱 커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수정안은 ‘유사한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경우’를 특별가중인자로 규정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유사한 사고로 볼 것인지, 어느 기간의 사고를 고려할 것인지, 동일 사업장뿐 아니라 같은 법인의 다른 사업장까지 포함할 것인지 등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사고 이후 재발방지 조치보다 사고 이전의 예방활동을 더욱 명확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사고 이후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개선하면 감경사유가 될 수 있는 반면 사고 이전 위험성평가를 충실히 운영하고 안전예산을 충분히 집행했는지, 최고경영진에게 위험이 제대로 보고됐는지 등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위험성평가의 실질적인 운영과 안전예산의 실제 집행, 이사회 또는 최고경영진에 대한 위험보고 및 개선조치, 도급·하도급에 대한 안전관리 등 사고 이전 안전보건관리체계의 운영 정도를 명시적인 양형요소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인에 대한 양형기준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법인에 대한 벌금액을 확인할 수 있는 137곳의 벌금 중앙값은 7000만원으로, 법정 상한인 50억원의 1.4% 수준에 불과했다. 5억원 이상의 벌금이 선고된 법인은 4곳에 그쳤다.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대부분 법인의 벌금 중앙값이 5000만원에서 8000만원 사이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대규모 기업에 대한 벌금이 실질적인 억지력을 갖는지 의문이라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법인에 대해서는 경영책임자와 독립된 양형기준을 마련하고 매출액과 영업이익, 안전투자를 회피함으로써 절감한 비용, 피해 규모, 반복사고 정도 등을 반영해 실질적인 벌금액을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중대재해처벌법 양형기준 마련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형량을 몇 개월 높이거나 낮추는 문제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현재의 ‘사고 결과와 유족 합의 중심’ 양형에서 벗어나 기업의 안전관리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했는지, 사고 발생 이전에 예방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를 중심으로 양형의 기준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존 산업안전보건범죄의 처벌과 양형만으로는 기업의 안전관리시스템 실패에 충분히 대응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만큼 새로운 양형기준 역시 기존 관행을 단순히 제도화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이뉴스

박미소 기자

miso@h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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