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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양심과 상식ᆢ계엄령 1년, 무너진 사회적 기준을 되묻다

한창호 문화경영연구소 소장 (전 인하대 초빙교수, 문화경영학 박사)
기사입력 : 2025-12-06 20:01
비상계엄 해제 1주년 미디어 파사드 (사진출처=연합뉴스)
비상계엄 해제 1주년 미디어 파사드 (사진출처=연합뉴스)
[Hinews 하이뉴스] 계엄령이 선포된 지 1년이 지났다. 선거를 통해 국가시스템이 표면적으로 정상화되었음에도 사회는 여전히 균열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사건의 충격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기준의 붕괴다. 무엇이 공정이며, 무엇이 상식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가 사라진 시대를 우리는 지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지금 판단의 방향성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으며, 그 공백은 제도적 정상화만으로는 메워지지 않는다.

이런 시점에서 표석환 저자의 <양심과 상식; 정역과 칸트로부터>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오늘의 혼란은 정치 공방이나 정파적 충돌로 설명되지 않는다. 더 깊은 곳, 인간 이성의 바탕을 이루는 양심과 상식이라는 정신적 기반이 약화된 데서 비롯된 위기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이 책은 동양의 정역(正易)과 서양 철학, 특히 칸트의 본체론을 연결함으로써 판단 능력의 근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기준이 왜 지금처럼 흐려졌는지를 성찰하게 만든다. 또한 『정역진경주해』를 집필한 소양 이규일의 감수를 통해 정역의 철학적 구조를 해명하는 데 깊이를 더했다.

정역은 조선 말기 김일부가 <주역>을 재해석해 제시한 사상으로, “선천이 끝나고 후천의 새 질서가 열린다”는 관점 위에 세워져 있다. 그 핵심은 본체가 이미 완성된 10(十)에서 시작된다는 인식이며, 이는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 기준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정역은 1과 0의 이원성, 불이(不二), 삼재(三才)의 조화를 통해 우주 변화의 질서를 설명하는데, 이는 곧 인간 마음의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정역은 종교적 신비주의가 아니라 동양식 형이상학이자 인식철학이며, 표석환은 이를 철학의 언어로 번역해 현대 사회의 판단 기준을 재구축하려는 작업을 시도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핵심 명제는 “양심은 본체의 마음, 상식은 본체의 인식”이라는 구절로 압축된다. 양심은 단순한 도덕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 본체와 연결되는 통로이며, 상식은 본체적 기준이 현실에서 드러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사회는 감정의 즉각적 반응, 편향된 정보, 이념적 충돌에 압도되어 양심과 상식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구조 속에 놓여 있다. 편향된 정보와 이념으로 극히 일 부 시민은 판단의 기준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이다. 어떤 제도적 변화가 있더라도 기준이 회복되지 않으면 사회는 올바르게 굴러갈 수 없다. 제도의 정상화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제도를 판단할 ‘가치 기준’이 살아 있는가의 문제이다.

<양심과 상식>은 동서양 인식론을 기반으로 인간 마음의 구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정역을 현대 형이상학의 언어로 재해석하며 판단 능력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한다. 동시에 한국 사회가 잃어버린 공정성과 신뢰 문제를 양심과 상식의 관점에서 다시 조명하며, 언론의 책임과 사회적 공공성의 회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제시한다. 이 책은 추상적 철학 해설이 아니라 지금의 한국 사회를 해석하는 하나의 진단서이자 처방서에 가깝다.

계엄령 1년을 지나온 지금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과연 우리는 제도를 되찾았는가, 아니면 그 제도를 판단해야 할 양심과 상식을 먼저 잃어버린 것인가. 혼란이 깊어질수록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도, 더 강한 주장도 아니다. 이 책이 말하듯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변하지 않는 기준, 즉 양심과 상식의 회복이다.

하이뉴스

한창호 문화경영연구소 소장 (전 인하대 초빙교수, 문화경영학 박사)

che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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