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ews 하이뉴스] 기업이 심각한 재정난에 빠졌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청산, 다른 하나는 기업회생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문을 닫느냐 살리느냐’의 차이지만, 그 속에는 사업의 가치와 미래 가능성을 따져보는 판단이 담겨 있다.
청산은 회사의 모든 것을 팔아 채권자에게 나눠주는 과정이다. 이때 회사가 가진 자산을 모두 매각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현금을 평가한 것을 청산가치라고 한다. 빠르게 팔수록 가격이 내려가고, 사업 자체가 가진 미래 수익력은 고려되지 않는다. 반대로 지속가치는 “회사를 계속 운영했을 때 벌어들일 수 있는 전체 가치”다. 지속가치는 보통 청산가치보다 훨씬 크며, 여기에는 미래 매출, 브랜드 가치, 인력과 네트워크가 포괄적으로 반영된다.
법원과 이해관계자들이 기업회생을 허용하는 기준도 바로 이 차이다. 지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클 것으로 기대된다면, 단순히 회사를 접는 것보다 계속 운영함으로써 사회적·경제적 가치를 더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판단되면 법원은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을 내리고, 그 아래에서 채무조정, 사업구조 재편, 투자 유치 등을 통해 회사를 정상화하는 기회를 준다.
기업회생은 다음과 같은 순서를 밟는다.
첫째, 법원에 회생을 신청하거나 채권자가 신청을 요청하면 법원은 청산가치와 지속가치를 비교한다. 둘째, 법원이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하면 회사는 법원의 감독 아래 채권자와 협의해 재정계획을 수립한다. 이 과정에서 채무를 줄이거나 상환 시기를 늦추고, 신규 자금 유치와 구조조정을 병행한다. 셋째, 재정계획이 법원과 채권자의 승인을 받으면 실행에 들어가고, 궁극적으로는 정상적인 영업활동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런 기업회생 제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바로 파라타항공이다. 파라타항공은 원래 플라이강원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격한 경영난에 빠져 영업이 중단되고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플라이강원은 2023년 5월 영업을 전면 중단하면서 사실상 모든 항공기를 반납했고, 같은 해 6월 회생절차 개시가 결정됐다.
회생 과정에서 플라이강원은 채권자들과 협력해 법원에 회생계획을 제출했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투자자를 찾는 과정에 들어갔다.
여기에서 핵심 역할을 한 기업이 바로 생활가전 기업인 위닉스다. 위닉스는 플라이강원의 조건부 인수 예정자로 선정되며 약 2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이 참여는 일종의 ‘스토킹 호스(Stalking Horse)’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사전에 인수 조건을 정해놓은 뒤 일반 경쟁입찰을 병행하는 구조다.
이후 플라이강원 회생 절차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다. 우선 ‘아무도 관심 없는 회사’라는 인식을 벗어나게 됐다. 이미 조건부 인수자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회사의 하방 위험을 막아주는 신호가 됐기 때문이다. 동시에 공개 경쟁입찰이 병행되면서, 혹시라도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투자자가 나타날 가능성도 열어두게 됐다.
위닉스가 항공사 인수에 나선 이유는 단순한 재무 투자 때문만은 아니다. 위닉스는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생활가전 시장에서 탄탄한 기업으로 알려져 있고, 이를 항공 업계에서도 실현하겠다는 전략적 의지를 밝혔다. 결과적으로 경쟁입찰에서 위닉스보다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한 투자자는 등장하지 않았다.
법원도 회생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위닉스 측이 적극적인 투자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실제로 법원은 회생절차 조기 종료를 결정했는데, 이는 채무 일부 상환과 사업 정상화를 위한 여러 준비가 계획대로 진행됐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인수 직후 플라이강원은 ‘파라타항공(PARATA AIR)’이라는 새 이름으로 리브랜딩됐다. 새 이름은 “맑은 하늘빛”을 상징하는 우리말 ‘파랗다’에서 따온 것으로, 고객 신뢰와 쾌적함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사진 = 파라타 항공 제공)
인수 직후 플라이강원은 ‘파라타항공(PARATA AIR)’이라는 새 이름으로 리브랜딩됐다. 새 이름은 “맑은 하늘빛”을 상징하는 우리말 ‘파랗다’에서 따온 것으로, 고객 신뢰와 쾌적함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파라타항공은 회생 절차 이후 단순히 사명만 바꾼 것이 아니라, 실제 운항 재개를 위한 준비에 곧바로 들어갔다. 항공사로 다시 날기 위해서는 항공운송사업자 면허 변경과 함께 항공운항증명(AOC)을 새로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안전관리 체계, 정비 기준, 운항 매뉴얼 등 방대한 항목에 대한 검증이 요구된다. 특히 최근 항공 안전 기준이 강화된 상황에서 파라타항공은 관련 심사를 순차적으로 통과하며 2025년 9월 AOC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운항은 같은 해 9월 말부터 단계적으로 재개됐다. 서울 김포와 제주를 잇는 노선, 양양과 제주를 연결하는 노선을 중심으로 국내선부터 취항하며 시장 복귀에 나섰다. 팬데믹 이후 회복되고 있던 국내 항공 수요를 흡수하는 전략으로, 초기부터 여러 노선을 동시에 준비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시험 운항을 넘어 본격적인 영업 재개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운항 준비와 함께 인력 확충도 병행됐다. 파라타항공은 회생 이후 처음으로 공개채용을 실시해 객실승무원, 정비, 영업 등 약 30여 개 직군에서 신입과 경력직을 포함한 대규모 채용을 진행했다. 전체 채용 규모는 약 140명에 달했으며, 특히 정비 분야에서는 A330과 A320 계열 기종 자격을 보유한 경력 인력을 중심으로 선발이 이뤄져 안전 운항 기반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후에도 객실승무원 추가 채용이 이어지며, 기단 확대와 노선 증가에 대비한 인력 보강이 계속되고 있다.
국내선 안착 이후에는 국제선 확대 계획도 구체화되고 있다. 일본 오사카, 베트남 다낭과 푸꾸옥 등 아시아 주요 관광·비즈니스 도시를 중심으로 노선 확장을 준비하며 해외 수요 공략에 나섰다.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라스베이거스 등 장거리 노선 진출 구상도 공개하며, A330급 중대형 항공기를 활용한 운항 준비를 단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파라타항공 관계자는 “운항 재개 이후 안전과 정시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노선 운영과 인력 확충을 차분히 진행하고 있다”며 “국내선 안정화를 바탕으로 국제선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며 고객 신뢰를 회복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무리한 확장보다는 수요와 운항 역량에 맞는 성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항공사로 자리 잡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